앞의 포스팅[2017/08/30 - [주저리주저리/리뷰] - [영화] 매트릭스 속 "THE ONE"의 존재, 네오(Neo)]에서
나는 매트릭스에 애착을 가진 사람들이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모피어스 일행과 싸울지도 모른다는 대사를 보고 노예주인을 위해 사우는 노예들 같다는 표현을 썼다. 그리고 이를 자본론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다고 하였다.
오늘은 영화 매트릭스를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는 방법을 글로 써보겠다.
영화 매트릭스가 나에게 매력적인 이유는 신선한 연출 기법도 아니고, 치밀한 세계관도 아니다. 바로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 교훈이다. SF를 기반으로 하는 영화 매트릭스의 내용은 우리의 삶과 철저하게 닮아있으며 그것이 상당히 깊이 있는 철학적 사고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또한 매트릭스가 함축하고 있는 주제는 많다. 이 영화는 자본론의 관점, 불교적 진리, 기독교적 진리, 플라톤의 동굴 비유, 철학의 인식론 등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다. 따라서 유연적인 사고방식으로 접근하면 좋다.
운명은 정해진 것인가 아니면 만들어 가는 것인가?
네오와 모피어스의 첫번째 만남에서 이루어진 대화를 살펴보자.
"Do you believe in fate, Neo?" 운명을 믿나, 네오?
"No" 아니오.
"Why not?" 왜그렇게 생각하지?
"Because I don't like the idea that I'm not in control of my life" 내 삶을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거든요.
운명(Destiny, Fate)은 사회과학연구방법 중 결정론적 자세를 의미한다. 결정론은 인간의 행위를 포함하여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연이나 선택의 자유에 의하여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인과 관계의 법칙에 따라 결정된다는 이론을 말한다. 결정의 주체가 초자연적인 신인 경우도 있으며, 또한 자연법칙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영화의 제목인 매트릭스(Matrix)가 가지고 있는 언어의 은유(metaphor)를 살펴보자. 매트릭스는 수학에서 행렬을 뜻한다. 수학이기 때문에 함수값을 나타내기도 한다. 또한 영화 속에서 프로그램 언어이기도 하다. 그리고 매트릭스라는 가상 현실을 통해 인간들을 통제함으로 통제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함수값 f(x) = ax + b 에 x값에 따라 y의 값이 이미 정해져 있다. 즉, 이미 값이 결정되어 있으므로 이는 결정론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결정론에서는 개인으 책임도 면제된다. 논술문제에서 자주 등장하는 예인데, 어떤 사람의 DNA 유전자가 폭력적인 성향을 지닌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결정론 하에서는 그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기도 전에 그 사람을 처벌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미 결과(Y값)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결정론과 반대되는 개념으로는 자유의지론이 있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다. 단 이때 전제는 우리에게 자유의지(Free will)가 있다는 점이다. 자유의지는 합리적인 결정의 주체가 다양한 대안 가운데 하나의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자유의지는 책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가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할 때 어떠한 책임이 뒤따르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자유의지에 따라 큰 소리로 노래를 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어떤 장소냐에 따라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야말로 정말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칸트에 의하면 본질적으로 가치 있는 유일한 것은 이성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세계 안에서도 그리고 세계 밖에서조차, 선한 의지 외에 조건 없이 선한 것으로 간주 될 수 있는 어떤 것을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칸트에게 있어, 당신이 좋은 삶을 영위했는지 혹은 그렇지 않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당신이 어떤 경험을 했는가가 아니라 당신이 어떤 선택을 했는가’ 이다. 만약 당신이 언제나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했다면 당신이 계획한 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았더라도 당신은 좋은 사람이다.
즉, 매트릭스의 가상현실은 결정론에 입각해 운영된다. 하지만 네오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선택해 나감을 알 수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인식론과 주지주의
인식이란 주어진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아는 것을 뜻한다. 즉, 주어진 것을 인지하는 것을 말한다. 또 사태에 대한, 명백히 드러나지 않은 관계들에 대한 인지를 뜻하기도 한다. 주지주의는 지성 또는 이성이 의지나 감정보다도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철학상의 입장이다. 한마디로 나타내자면 '알면 된다!'이다.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REAL이다. 영화 속에서 네오는 내가 지금 보는 현실이 진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진실을 알기위해 노력한다. 네오는 영화 초반 아직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이 잘못됬음을 인지한다. 이 인지가 네오를 머리가 깨질듯 미치게 만든다.
영화 매트릭스에서는 썬글라스, 거울과 같이 무언가를 비추게 할 수 있는 물건이 많이 등장한다. 그리고 초반에 유리창을 닦는 장면도 등장한다. 거울은 자신을 반영하고 인식하는 도구이다. 또한, 진실(REAL)을 보기위한 덕목 중 하나인 Reflection을 의미한다. 즉, 거울 속에 자신이 비친다면 그것은 자신을 성찰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매트릭스라는 통제하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아성찰이 필요하다. 자기 인식은 일종의 열쇠다. 이 열쇠가 없으면 어떤 가치 있는 지식의 문도 열 수 없다. 인간은 악전고투를 통해 자기 인식을 얻는다.
우리가 거울 앞에 서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해도 그 영상은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인지에 대해 아무 말도 해 주지 않는다. 우리는 거울을 잘못된 방법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그것을 자아가 존재한다는 환상을 강화하기 위해 사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이러한 자아는 너무도 소모적이어서 거울이 없으면 우리는 무기력해지고 심지어 고통스러워지기까지 한다. 허구의 세계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자아와 개별성에 대한 환상을 재확인하기 위해 거울을 필요로 한다.
불교에서 스님이 깨달음에 대해 쓴 시를 게송이라 한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 마음은 면경(밝은 거울을 의미, 매트릭스 영화 속의 거울과 썬글라스와 같은 장치들과 동일한 역할)과 같으니, 부지런히 쓸고 닦아서 먼지며 때 앉지 못하게 하세 "
이 와 비슷한 문학으로는 조선 초기 퇴계이황의 성리학적 도덕의 이치를 설명하는「설리시」가 있다.
영화 매트릭스 속 일그러진 거울과 깨진 거울은 불완전한 자의식을 의미한다.
이와 비슷한 예로, 이상의 「거울」이 있다.
거울
이상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요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이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라도했겠소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께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
또괘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주제 : 자아 모순이 빚은 자아 분열과 자기 무능에 대한 자의식
시 속에서 거울은 자아를 비추어 주는 물건이다. 이 때 비추어지는 자아는 진실한 모습이 아니라 반대로 선 모습이어서 이로부터 분열을 자각하게 된다. 왼손잽이는 진정한 자아에 거역하여 상반된 행위를 하는 존재를 의미한다. '외로된' 구절은 '나의 인식과 의도를 벗어나 어긋난 행위를 시도하는'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악수를모르는왼손잽이'는 화해를 거부하는 존재이다. 나의 의도나 참모습과 상반된 존재라는 뜻으로, 자의식에 의해 분열된 자아와의 대립을 표현하고 있다. '거울이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져보기만이라도했겠소' 구절은 '나의 참된 모습을 비추어 주지 못하지만, 그나마 거울이 없었다면 어떻게 삐뚤어진 나의 모습이나마 볼 수 있겠소.'로 해석할수 있다. 즉, 왜곡된 자아에서 참된 자아를 찾으려고 하는 존재의 역설적 행위를 보여 주는 말이다.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의 구절은 거울 속의 자아가 독립하여 스스로 의식할 수 있는 상태로 나아온 순간이다. 앞의 구절까지는 거울 밖과 속의 자아가 대립되어 그 모순을 인식하고 있었으나, 여기에서는 분열이 극에 이르러 거울 속의 허상을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 상태로 분열되었다.
정신 분석학적으로 본다면, 일상적 자아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 속에서 발견하고 자아관을 확보한다. 이때 자아의 통일성은 거울에 비친 상을 자기 자신으로 동일시함으로써 비로소 구성된 것이다. 즉, 자아는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동일시 과정을 거쳐 형성된 결과물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렇게 거울에 비친 상을 통해 구성된 동일성은 자기 소외적 성격을 지니게 마련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시는, 현상적 자아인 '나'와 자의식에 존재하는 본질적 자아인 '또 다른 나'의 대립과 모순을 통하여 참된 자아를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의 비극적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는 작품이다.
윤리학에서의 주의주의, 진리를 알기위해 용기가 필요하다
모피어스는 빨간 알약을 선택한 네오에게 "I'll show you how deep rabbit hole." 토끼굴이 얼마나 깊은지 보여주겠다고 말한다. 네오는 흰토끼 문신을 한 사람을 따라 왔다가 모피어스와 만나게 된다. 이는 흰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는 앨리스와 같다. 네오가 빨간 알약을 선택하는 것은 자유의지의 다른 표현이자 내가 그동안 참(옳음 것, right, 영화에서는 '진실 혹은 현실'로 해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수도 있음을 확인하려는 용기이다. 도전하려는 용기말이다. 이것은 앞의 알면 된다는 주지주의. Reflection와 반대다. 주의주의는 '알면 뭐하냐! 실천하려는 의지가 있어야지!'라 할 수 있다. 즉, 의지가 지성(知性 :悟性)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철학상의 입장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모피어스는 진정한 '그'인 네오에게 말한다.
" 자네도 나처럼 곧 알게 될 거야. 갈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걷는 것의 차이를. "
갈 길을 안다는 것은 곧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주지주의를 뜻한다. 하지만 그 아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다. 이것은 실천에 옮길 수 있는가를 묻고 있다. 즉, 주의주의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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