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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검정능력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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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검정능력시험 대비 한국사의 큰 흐름 파악하기 (아직 정리중) 1. 고조선과 여러 나라의 성장 2. 삼국시대 3. 남북국 시대 4. 호족을 중심으로 보는 신라 말 혼란의 시대 5. 후삼국 시대 6. 고려 건국 7. 고려 중기의 문벌귀족 8. 고려 무신집권기 9. 고려 원간섭기 10. 고려 말 신진사대부 11. 조선 건국과 새로운 왕조의 기틀 마련 12. 붕당정치 13. 영·정조시대의 탕평정치 14. 흥선대원군 15. 임오군란과 동학농민운동 16. 일제의 침략 17. 일제강점기 18. 현대사회 한국사를 공부할 때 뼈대를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굵직한 뼈대를 먼저 세우고 살을 붙이는 방식으로 공부하면 사건의 전후관계 흐름을 파악하기 쉽다. 먼저, 고조선과 초기 국가들에 대해 살펴보자.역사시대 이전을 선사시대라고 하는데, 선사시대는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2018. 4. 18.
[한국사] 기본적으로 알아두면 좋을 사건 연도 기원전 1 세기에 신라, 백제, 고구려가 성립되었다.4세기에 백제가, 5세기에 고구려가, 6세기에 신라가 전성기를 맞이 했다.7세기 후반에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였다.10세기 초 고려가 건국되었다.12세기 후반 ~ 13세기 후반까지 약 100년간 무신정권이 고려를 지배하였다.14세기 말 조선이 건국되었다.16세기 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18세기에 영조와 정조가 탕평책을 실시하였다.19세기 전반에는 외척의 전횡이 매우 극심했던 세도정치 시기였다.20세기 초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었다. 나라 왕조의 끝을 같이 한 왕 백제 의자왕 660 고구려 보장왕 668 발해 대인선 926 신라 경순왕 935 고려 공양왕 1392 조선 순종 1910 신라하대 선덕왕 ~ 경순왕(935) 676년 삼국통일 문무왕 7C 후반918.. 2018. 4. 18.
[짧은 한국사] 홍경래의 난과 임술농민봉기 홍경래의 난1811년, 순조몰락 양반 홍경래 + 중소상인 + 영세농민 + 광산노동자원인 : 서북민(평안도) 지역차별- 중앙 관직 진출 기회 제한, 평안도 상공업 억압'가산'에서 시작되어 청천강 이북 8군을 점령하였다.정주성에서 관군에게 패함으로 실패함.한계 : 영세 농민과 광산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하지 못함. 지역적으로 끝났다.(전국 확산 X , 전국적인 호소 X) 홍경래의 난 격문평서대원수는 급히 격문을 띄우노니 관서의 부로와 자제, 공·사 천민들은 모두 이 격문을 들으라. 무릇 관서는 성인 기자의 옛 터요 단군 시조의 옛 근거지로서, 의관이 뚜렷하고 문물이 아울러 발달한 곳이다.그러나 조정에서는 관서를 버림이 분토와 다름없다. 심지어 권세 있는 집의 노비들도 서토의 사람을 보면 반드시 '평안도 놈'아.. 2017. 10. 20.
[짧은 한국사] 1차, 2차 갑오개혁과 을미개혁 1894년1차 갑오개혁 김홍집 내각1894.06 군국기무처 설치동학농민운동 → 교정청 설치 → 일본의 내정개혁 강요 → 1차 김홍집 내각 구성 → 군국기무처 중심 개혁 개혁 내용중국 연호 '광서' 폐지, 연호 개국기원 사용재정일원화(탁지아문)6조 폐지, 8아문왕실과 국정 사무 분리, 삼사의 언론기관 폐지, 경무청 설치은본위제도, 조세 금납화, 일본 화폐 유통 허용도량형 통일과거제 폐지, 보통시험/특별시험 도입방곡령 반포 금지신분제 철폐, 문벌 폐지, 공/사노비 제도 폐지조혼 금지, 과부 재가 허용고문 금지 연좌제 폐지 1차 갑오개혁은 긍정적인 면도 있으나, 왕의 권한을 약화시켰다는 평.일본의 정치적/경제적 간섭과 침투를 강화시키는 배경을 만들어 주었다는 평. 1894~1895년2차 갑오개혁 일본군의 군국.. 2017. 9. 26.
[짧은 한국사] 연호정리 내가 헷갈리는 것들 고구려 광개토대왕 5c초 영락 신라 법흥왕 6c 건원 진흥왕 6c 개국→대창→홍제 발해 무왕 인안 문왕 대흥 선왕 건흥 고려 광종 광덕, 준풍 조선 고종 1차갑오개혁(1894) 중국연호 광서 폐지, 개국기원 사용 고종 을미개혁(1895) 건양 대한제국 고종(1897) 광무 순종(1907) 융희 2017. 9. 25.
[짧은 한국사] 임오군란 임오군란임오년 서울의 영군들이 큰 소란을 피웠다. 갑술년 이후 대내의 경비가 불법으로 지출되고 호조와 선혜청의 창고도 고갈되어 서울의 관리들은 봉급을 못 받았으며, 5영의 병사들도 가끔 결식을 하여 급기야 5영을 2영으로 줄이고 노병과 약졸들을 쫓아냈는데, 내쫓긴 사람들이 난을 일으켰다. 임오군란은 도시 빈민층들도 합류했다. (ㅇ)→ 정부의 개화정책에 반대하는 서울의 하층민도 참여했음. 2017. 9.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