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조건 : 정념과 이성에 따라 각자의 수준에 맞춰 교육해야한다.
우리의 정념은 자기 보존을 위한 수단이므로 그것을 근절하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고도 헛된 것이다. 정념을 갖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해서 그 모든 정념이 자연적인 본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념의 근원은 자연이며, 그 근원은 수많은 작은 흐름에 의해서 불어난 큰 강물을 이룬다. 자연스럽게 생긴 우리의 정념은 극히 한정되어 있으며 그것은 우리의 자유와 보존을 위한 수단인 것이다. 정념의 원천이며 다른 모든 정념의 근본이 되는 것,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에 언제나 존재하는 유일한 정념은 자기에 대한 애착심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모든 정념은 자연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변형된 정념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도리어 해를 준다. 인간이 자연 밖으로 이탈하여 자신과 대립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생겨나는 정념에 법칙과 질서를 정하려면 그것이 스스로 조정하는 것은 자연이므로 우리는 그저 내버려 두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주위의 모든 것들이 그에게 상상력과 편견을 불어넣기 때문에 여러분은 어린이의 감정으로 하여금 상상력을 억제하고 이성으로 하여금 타인의 비판을 극복하도록 해야한다. 모든 정념의 근원은 감수성이지만 상상이 정념의 흐름을 결정한다. 따라서 정념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첫째, 인류로서 그리고 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참된 관계를 인식하고 둘째, 이러한 관계에 따라 모든 애정의 감정을 조절해야한다.
인간은 일단 사고하기 시작하면 그칠 줄을 모른다. 정신의 자연적인 발달은 촉진되어도 그 반대의 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우리의 능력이 감각적인 사물에만 국한되어 있으면 추상적이고 지적인 관념에 대해서는 결코 판단하지 못한다. 세계를 움직이고 모든 체계를 형성하는 보이지 않고 손에 만져지지도 않는다. 정신에 대한 진정한 관념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물체를 연구해야 한다. 이와 정반대의 순서를 따르면 유물론을 확립하는 데 이용 될 뿐이다.
인식의 최초의 도구는 '감각'이므로 구체적인 물체만이 우리가 직접 그 관념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정신이란 철학을 배우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예를 들어 원시인의 경우 우주를 감각적인 신들로 가득 채웠다. 왜냐하면 물질이라는 관념보다 정신이란 관념이 더 빨리 자라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별, 바람, 나무, 도시 모두가 영혼과 생명을 지닌 하나의 신들이었다.
하지만 로크는 이러한 것들이 순서의 오류라고 주장하였다. 실체라고 하는 추상 관념에 이르면 이 실체를 인정하기 위해 서로 배척하여 양립할 수 없는 성질들이 실체 속에 있다고 가정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유와 물체의 확장이라는 성질로서 하나는 본질적으로 분할이 가능하지만 다른 하나는 본질적으로 분할이 가능하지만 다른 하나는 분할이 전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진리를 이해할 수 없는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잘못하면 진리를 설명하는 것을 삼가야한다. 그것은 진리를 오류와 바꾸는 우를 범하게 될테니 말이다.
교육의 매개체 : 경험이 최선의 방법이다
자존심이 발달하면 상대적인 자아의식이 작용하며 다른 사람을 관찰할 때도 자기를 남과 비교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신과 똑같은 인간을 조사한 뒤에 자신을 어떤 위치에 두어야 하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타인의 정념에 대해 우리를 자극하는 것은 우리의 정념이며 악인을 미워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이해관계 때문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해를 끼칠 때 우리는 그들을 미워하게 된다. 만일 우리가 그들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자신들의 해악을 벌하고 있는가를 안다면 우리는 쉽사리 그들의 악덕을 용서하였을 것이다. 이기심은 유익하면서도 위험한 도구여서 그것을 사용하는 손에 종종 상처를 입히기도 하며 악행없이 선생하기도 꽤 어려운 일이다. 자만에서 오는 방상보다는 차라리 편견에서 오는 착각이 더 나을 것이다. 위인은 자신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자만심에 빠지지 않고 언제나 겸손한 태도를 잃지 않는다. 미덕은 자신의 것이지만 재능은 결코 자신의 것이 아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도 허영심이란 오류는 깨우쳐 줄 수 없다. 허영심을 고쳐줄 수 있는 것은 경험 밖에 없다. 적어도 그것이 싹트기 시작할 때라면 자라지 못하도록 방지할 수 있다. 학생이 잘못을 범하기 전에 미리 경고하라. 그러나 일단 잘못을 범했다면 꾸짖지 마라. 괜한 학생의 자존심만 건드릴 뿐이다. 반항심을 불러일으키는 경고는 필요 없다. 전에 경고했던 말을 생각나게 하는 좋은 방법은 그 말을 잊어버린 척하는 것이다. 반대로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을 때는 친절한 말로 따뜻하게 대해주어야 한다. 우리의 위로가 교훈이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더욱 더 유익한 교훈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청년의 열정은 교육에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열로 인해서 교육이 성취되고 완성되는 것이다. 그들의 강한 힘은 정열의 실마리를 제공해 주며 그들의 최초의 애정은 그들 행동의 고삐가 된다. 사랑함으로써 그는 처음으로 인류와 결합하게 된다. 그렇다고 싹트기 시작한 그의 감수성을 인류 쪽으로만 돌린다고 해서 인류를 포용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 감수성은 처음에는 자기와 가까운 친지들에게만 국한되는데 이 개인적인 애정을 인류로 확산시키는 것은 그의 자연성을 키워나가 자신의 감정과 타인의 감정을 숙고한 연후에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다.
제자가 교수도 자기와 같은 정도의 지식밖에 가지고 있지 않으며 자기처럼 유혹 당하기 쉽다고 생각하여 된다는 말이 아니다. 사리를 분별할 줄 아는 교사에 대해 갖는 이성의 권위와 월등한 지식 그리고 청년이 알 수 있고 청년에게 도움이 되는 이익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오랜 경험으로부터 자기가 교사로부터 사랑받고 있으며 또 교사는 현명하고 지식이 풍부한 사람으로 자기의 행복을 원하고 자신을 후원해주는 사람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교사가 제자처럼 속아 넘어가지 않고, 빠져들 위험을 미리 경고해주고 그 위험을 확실히 알 수 있도록 보여주는 일이 필요하다.
교육의 합주 : 교사와 학생간의 소통
교육의 기능이란 제자가 그 교육을 기꺼이 받도록 하는데 있다. 그런데 그렇게 되려면 그의 정신이 여러분의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완전히 수동적이거나 또는 여러분이 말하는 것을 듣지 않기 위해 도무지 아무것도 할 일이 없거나 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교사는 어느 정도 양보해서 "나는 이해한다. 나는 스스로 꿰뚫어본다. 나는 행동한다. 나는 스스로 배운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우리를 사회에 적응시키는 교육을 한다고 주장하면서 우리들을 마치 독방에서 홀로 사색하거나 우리와의 전혀 무관한 공식적인 토론이나 하면서 일생을 보내야 할 사람으로 교육시킨다. 청년이 무지해서 맹목적이 되거나 정념 때문에 해를 입는다면 우리가 막아야 한다. 사람이라 선한 일을 하면서 선한 사람이 된다. 진정한 정성으로 선행을 베풀고 가난한 자의 이해관계가 자신의 이해관계가 되도록 하라. 청년에 대한 교육은 경험으로 가르칠 것이며, 절대 책으로 가르치지 마라. 할 말이 없는데 말 연습을 시킨다든가, 사용법을 모르는데 수학을 가르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모든 정념이 발달한 청년에게 내가 수사학을 가르친다고 하면 그의 정념을 기쁘게 해줄 대상을 끊임없이 제시할 것이며 또 다른 사람들이 그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그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 것인지를 그와 함께 검토할 것이다.
우리는 이처럼 상냥한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하고 우리의 성공이나 실패에서 그 원인을 성찰하고 발견한다면 이 세상에서 청년의 정신에 뿌리 내리게 할 수 없는 지식이란 거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절감하고 있다. 또한 학교 지식과 더불어 그것을 실생활에 활용하는 학문도 얻게 될 것이다. 타인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인류의 행복에 어떠한 행동과 취미와 쾌락이 적합한지를 검토해 온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에게도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보다는 일반적으로 올바른 평가를 내리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이기심을 다른 사람에게로 펼치자. 그러면 그것은 미덕으로 바뀌며 인간의 마음에는 모두 미덕의 뿌리가 박혀있는 것이다. 소수가 아닌 만인의 최대 행복에 그가 협력한다면 누구에게 가장 큰 행복이 돌아가는 그에게는 아무 관심도 없는 것이다. 이것이 사생활을 떠나서 현자가 첫째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이것이 사생활을 떠나서 현자가 첫째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사람은 모두 인류의 일원이지 어떤 개인의 일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교육은 중요하기 때문에 원점으로 되돌아가 이야기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는 누구이고 나는 또 누구인가, 그는 무엇을 했으며 나는 또 무엇을 했는가 알려 주어야 한다. 어른을 지도할 때는 어린이를 지도할 때와는 정반대의 방법을 취하면 된다고 생각하라.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교육의 시기는 우리에겐 결코 잊지 못할 시기로서 우리의 일생을 통해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 시대의 오류 중의 하나는 너무나 이성에만 치우치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이성에만 맡기려고 하기 때문에 관념으로만 그치고 행동으로는 아무것도 나타내지 않는다. 항상 논리를 따지는 것은 소인배들의 공통된 버릇이지만 위대한 사람은 말로써 사람을 설득하고 행동하게 한다. 청년들에게 무미건조한 이론을 내세우지 말고 영혼의 언어를 구사하여 이론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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