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금융 중심지이자 무역의 중심, 화려한 스카이라인과 ‘쇼핑천국’으로도 널리 알려진 홍콩은 사실 알고 보면 복잡한 역사를 가진 도시다.
홍콩 [ Hong Kong , 香港(샹강) ]
중국 대륙의 남동부에 있는 특별행정구.
정식명칭은 ‘영국령 홍콩’이었으나 중국으로 반환 뒤부터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 SAR’로 바뀌었다. 주도는 홍콩섬의 빅토리아시(홍콩市)이다. 주장강 하구의 동쪽 연안에 있는 홍콩섬과 주룽반도 및 그 밖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가운데 홍콩섬, 스톤커터섬과 주룽반도의 선단에 있는 주룽시는 영국 영토이고, 주룽시의 후배지인 신제와 230개의 부속도서는 조차지이다. 행정구역은 18개 구로 이루어져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구미대륙의 해양을 연결하는 중추로서 상업·무역·금융이 발달하여 '동방의 진주' '관광쇼핑의 천국'이라고 불린다.
주장 하구의 동쪽, 난하이 연안에 있으며, 광저우로부터 약 140㎞ 떨어져 있다. 홍콩섬과 주룽반도의 주룽, 신계와 부근의 섬들을 포함하며, 면적은 1104㎢이다. 과거에는 '샹장' 또는 '샹하이'라고도 불렸으며, 명(明) 나라 만력 연간에 동완에서 생산되는 향나무를 중계운송하기 시작하여 '샹강'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홍콩은 샹강의 광둥어 발음을 영어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전 인구의 99%가 중국인이고, 그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광둥인 외에 커자인, 푸젠인, 차오저우인이 있다. 그 밖에도 영국인, 미국인, 유럽인, 아시아인들이 살고 있다. 공용어로는 영어와 베이징어가 함께 쓰이고 있으나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언어는 광둥어이다.
과거에는 광둥성 신안현(지금의 선전)에 속하였으며, 아편전쟁 이후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1984년 중국과 영국의 연합성명에 따라 1997년 7월 1일 주권을 회복하고 특별행정구로 지정하였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1국2체제를 취하여 고도의 자치권을 누리는 지방행정구역으로서 50여 년 동안 변함없이 자본주의 사회·경제 제도와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일단, 도시의 탄생부터가 아편전쟁의 산물이다.
이 전쟁에서 진 중국이 영국에 홍콩섬을 강제로 빼앗기면서 도시가 시작됐다.
역사상 가장 추악하고 부도덕했던 전쟁의 부산물인 것이다.
중국은 이후 2차 아편전쟁에서도 패배하면서 현재 홍콩의 도심인 주룽 반도를 분할해줬고 1898년 2차 베이징 조약을 통해 지금 면적의 90%를 이루는 신제와 부속 도서를 99년 기한의 조차지로 내놓으면서 지금의 홍콩이 완성되었다.
홍콩이 비약적으로 발전을 하게 된 건 1900년대 초반이다. 철도가 개통되면서부터 국제적인 무역항으로 입지를 다지게 됐고, 인구도 빠르게 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부침을 겪기도 했지만, 홍콩은 밀려드는 사람과 돈에 힘입어 경제를 꽃피웠다.
홍콩 시민들은 중국에서 경험할 수 없는 '자유'를 누렸다. 모두 영국 통치 하에서 벌어진 일이다.
국제 자유무역항으로 성장한 홍콩은 2차 세계대전 때(1941년) 일본에 먹혔고 4년 뒤 다시 영국령이 됐다.
1949년 국공내전을 피해 돈과 기술을 가진 중국인이 대거 몰려왔다.
그 덕에 홍콩상하이은행과 영국계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이 일취월장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땐 외자공급원이 됐고 마침내 글로벌 서비스업 중심지와 쇼핑천국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입장에서 홍콩은 빼앗긴 자신들의 영토였고, 아편전쟁은 잊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
즉, 홍콩이 영국령이라는 사실은 중화사상을 가진 중국인들 입장에서는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남기는 일인 것이다.
영국령 식민지 홍콩의 장래에 대한 중영협상은 1982년 9월부터 시작되었다.
영국은 주권과 통치권의 분리를 도모하여 주권이 중국에 있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영국의 통치를 계속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반대로 주권과 통치권의 일괄 반환을 인정하였다.
1984년 12월의 중영공동성명에서 1997년 7월 1일 중국이 홍콩의 주권을 회복할 것, 그 후 50년간 홍콩은 ‘1국 2제도(하나의 국가에 2개의 사회ㆍ경제제도의 존재를 인정한다)’에 기초하여 자치권을 갖는 특별행정구가 될 것이 결정되었다. 중국은 홍콩의 번영을 유지하기 위해 통화ㆍ금융제도에 대해서도 그 존속을 인정하여 홍콩 달러가 홍콩의 유일한 법정 통화로서 계속 유통하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1997년이 됐고 영국은 약속대로 "홍콩"을 중국에 반환해야 했다.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화려한 성장을 일궈왔던 홍콩 시민들에게 중국 '공산당' 정부가 반가울리 없었지만 이 '1국 2체제' 약속 덕분에 홍콩은 지금까지 높은 수준의 자치권을 보장받았고 중국 중앙정부와 별도로 자체적인 행정·입법·사법체계를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1997년 6월 30일 영국의 홍콩주권은 종료되고, 1997년 7월 1일 중국에 주권이 이양되었다. 같은 날, 북경의 기념식전에서 장쩌민 국가주석은 홍콩 반환에 관해 '100년의 치욕을 씻었다'라고 연설하였다.
* 홍콩반환과 관련해 해방이란 표현은 중국, 영국, 홍콩 그 어느 곳에서도 사용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서방언론에서는 반환(Return)이란 표현을 쓰고, 중국에서는 회귀라는 표현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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