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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모든 종류의 교육에는 적당한 시기가 있고 피해야할 위험이 있다 (3)

by 돈버일하 2017.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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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자연의 참된 시기가 다가온다.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의 낡은 태도를 버리고 제자를 우리의 친구이며 한사람의 성인으로서 대우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 "권위가 가장 필요할 때에 그것을 버리라니? 탈선이 우려되는 시기에 그를 제멋대로 내버려두라니? 그에게 가장 필요한 시기에 내가 행사해 오던 권리를 포기해야 한단 말인가?”하고, 누가 우리에게 그 권리를 포기하라고 했던가? 이제야 비로소 그 권리는 우리에게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완력이나 잔재주로 그 권리를 행사하였으며 우리의 마음을 구속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애정이 섞인 소리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하지 않았다. 우리는 가장 기본이 되는 정념인 자기에 대한 사랑을 품고 그 감정을 여러분에게 의탁하고 있다. 이 외의 다른 감정들은 일시적인 감정으로서 서로 지워버린다. 우리를 타락시키는 일만 없다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순수하게 순종할 것이다. 우리가 반항하기 시작했을 때는 우리는 이미 타락한 것이다. 위에서 지금까지 말했던 교육의 시기는 우리에겐 결코 잊지 못할 시기로서 우리의 일생을 통해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 시대의 오류 중의 하나는 너무나 이성에만 치우치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이성에만 맡기려고 하기 때문에 관념으로만 그치고 행동으로는 아무것도 나타내지 않는다. 항상 논리를 따지는 것은 소인배들의 공통된 생각이지만 위대한 사람은 말로써 사람을 설득하고 행동하게 된다. 청년들에게는 무미건조한 이론을 내세우지 말고 영혼의 언어를 구사하여 이론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문연구에 적당한 시기가 있듯이 세상의 관습을 판단하는 데도 적당한 시기가 있다. 너무 이른 시기에 그것을 가르치면 일생동안 그것을 선택하거나 반성하는 일도 없이 그대로 다를 것이다. 반면 그 관습을 익히고 그 원인을 아는 자는 확실한 판단을 가지고 따르기 때문에 적절하고 훌륭하게 그것을 따르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종류의 교육에는 적당한 시기가 있고 피해야할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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