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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한국사검정능력시험 대비 한국사의 큰 흐름 파악하기 (아직 정리중)

by 돈버일하 2018.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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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조선과 여러 나라의 성장 

2. 삼국시대

3. 남북국 시대

4. 호족을 중심으로 보는 신라 말 혼란의 시대

5. 후삼국 시대

6. 고려 건국

7. 고려 중기의 문벌귀족

8. 고려 무신집권기

9. 고려 원간섭기

10. 고려 말 신진사대부

11. 조선 건국과 새로운 왕조의 기틀 마련

12. 붕당정치

13. 영·정조시대의 탕평정치

14. 흥선대원군

15. 임오군란과 동학농민운동

16. 일제의 침략

17. 일제강점기

18. 현대사회


한국사를 공부할 때 뼈대를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굵직한 뼈대를 먼저 세우고 살을 붙이는 방식으로 공부하면 사건의 전후관계 흐름을 파악하기 쉽다.


먼저, 고조선과 초기 국가들에 대해 살펴보자.

역사시대 이전을 선사시대라고 하는데, 선사시대는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를 거치면서 발전해왔다. 이 중 청동기 시대가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한국사의 첫 나라인 고조선이 청동기 문화를 받아들여 건국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고조선은 철기 문화를 받아들이며 발전하였다. 중국의 한나라에 의해 고조선이 멸망할 때 만주 지역과 한반도에는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세워진 여러 초기 국가들이 있었다. 만주에는 '부여', 동해안에는 '옥저'와 '동예', 한반도 남부에는 '삼한(마한, 진한, 변한)'이 존재했다.

삼국시대는 매우 중요하다. 한반도의 동남쪽에 신라가 건국되었다. 부여의 유이민들이 만주의 서남쪽으로 내려와 고구려를 세웠고, 그 중 일부는 남쪽으로 내려와 백제를 세웠다. 모두가 기원전 1 세기경 이다. 기원후 1 세기에는 한반도 남부 지방에 가야연맹이 설립되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건국되고 나서 약 700여년 동안 삼국시대가 지속되었다. 국가 통치 체제를 마련하고 전성기를 맞이한 순은 4 세기 근초고왕 시절의 백제, 5 세기 장수왕 시절의 고구려, 6 세기 진흥왕 시절의 신라 순이다. 이 순서는 한강유역을 차지한 순서와도 동일하다.

삼국 중 가장 마지막으로 전성기를 맞은 신라는 7세기 676년 삼국을 통일하였다. 그러나 이 삼국통일이 '당'이라는 외세의 지원을 받아 이룬 것이어서, 삼국 통일 후 당군을 한반도에서 몰아내기 위해 나당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 결과 영토가 이전보다 축소되었다. 삼국 통일 후 약 200년 간을 남북국 시대라고 부르는 이유는 한반도 남쪽에는 통일신라가, 북쪽에는 고구려 유이민들에 의해 세워진 발해가 있었기 때문이다.

8세기 신라 말에 들어서면서 신라의 귀족들은 왕위 쟁탈전에 빠지고 부패하였다. 그리하여 9세기에는 참다못한 농민들이 전국적인 봉기들을 일으킨다. 혼란스러운 신라 말, 이때를 '신라 하대'라고 부른다. 신라의 중앙 정부에서는 갈수록 지방을 통제하기 어려워지고, 자연스럽게 지방에서 세력을 키운 이들이 등장하게 된다. 이들을 '호족'이라 부른다. 최치원 등의 6두품은 골품제에 불만을 표혆며 능력을 중시하는 유교정치이념을 제시하였으나 세력이 약하여 배척당하였다. 그래서 6두품 중 일부는 은거하기도 하였지만 다른 일부는 지방 호족 세력들과 연계하여 사회 개혁을 추구하였다.

10 세기 초, 지방에서 힘을 키운 세력 중 독자적인 정권을 수립하여 국가 단계까지 끌어올린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견훤과 궁예이다. 이들은 후백제와 후고구려를 세웠는데 이 약 30년간을 후삼국시대라고 한다.


후고구려의 궁예를 쫓아내고 왕위에 오른 왕건이 국호를 '고려'라 하였다. 태조 왕건은 지방 호족들의 지원을 받아 918년에 고려를 건국하였다. 하지만 즉위 후 지원 세력이던 호족들은 왕권을 위협하는 세력이 되었고 태조 왕건은 호족들을 견제하기 위한 정책들을 내놓았다. 고려 태조, 혜정, 정종, 광종, 경종, 성종, 목종, 현종에 이르는 기간 동안 고려의 중앙 통치체제와 지방행정조직, 군사조직 등이 개편되고 정비되었다.

고려 중기 지배 세력은 문벌귀족들이었다. 신라 말의 호족 세력 중 중앙으로 진출한 세력들이 귀족이 되었다. 신라의 신분 제도인 골품제로 인해 정계진출이 어려웠던 6두품 세력들도 중앙 정계로 진출하여 귀족이 되었다. 귀족들 중에는 대를 이어 정계에 진출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문벌귀족이라고 한다. 문벌귀족은 11 세기부터 12 세기 중반까지 약 150년간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중 하나가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가 고려를 침입하자 사대관계를 수락 한 것이다.

문벌귀족들이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하고 왕실과 불교도 타락하자,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켰다. 이것이 1170년에 일어난 무신정변이다. 무신들이 고려의 지배세력이 된 시기를 무신집권기라고 하는데 이 시기에 고려에 큰 변화가 생겼다. 무신들은 행정능력이 부족하기에 어쩔 수 없이 젊은 사대부들이 정계에 진출하게 되었는데, 이들이 후에 새로운 왕조의 집권세력이 되는 신진사대부들이다. 무신집권기 후반에는 고려를 침입한 몽골족의 영향을 크게 받아 고려에 몽고풍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사회혼란이 극심했던 무신집권기에는 농민들과 노비들의 반란이 많이 일어났다. 무신집권기는 집권시기의 왕보다는 정권을 장악했던 인물 중심으로 공부해야한다.

원의 간섭과 고려 내 지배세력의 재편에 대해 살펴보자. 고려의 무신정권을 무너뜨린 몽골은 원나라를 세우고 고려를 지내하기 시작한다. 13 세기 후반부터 14 세기 중반까지 왕의 이름 앞에 '忠 충성할 충'을 붙여야만 했던 시기가 바로 원간섭기이다. 이 시기의 지배세력은 친원파였다. 친원파들은 원나라에 기대에 대토지를 소유하고 높은 벼슬을 진출하였다. 이들을 권문세족이라고도 한다.

고려 말 공민왕이 즉위하여 친원파를 제거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보력하엿다. 무신정권 때 등장한 신진사대부들과 고려 말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을 막으며 세력을 키운 신흥 무인 세력이 연합하여 권문세족의 대토지를 몰수하였다. 과전법을 실시하여 이 토지들을 백성들에게 나눠 주어 민심을 사로잡고, 이어 1392년 조선을 건국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강화된 왕권을 바탕으로 통치체제와 문물제도를 정비하였고, 사회도 대체적으로 안정되어 갔다. 하지만 고인 물은 언제나 썩는 법, 조선의 건국에 공을 세운 이들이 그 공을 인정받아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들이 점차 부패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비판하고 몰아냈던 권문세족들의 대토지 소유 형식을 그대로 답습해나간 것이다. 이때 이러한 현상들을 비판한 지방세력들이 '사림파'고, 중앙정계에서 권문세족들의 악습을 답습하던 세력을 '훈구파'라고 한다.

중앙 정계에서 개혁을 실시하려고 했던 사림파들은 기존의 훈구파와의 대립 속에서 '4대 사화'를 겪는다.

 구 분

 시 기 

 내 용 

무오사화 

연산군(1498) 

원인 :「성종실록」편찬하면서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의 내용

조의 제문의 내용 :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를 찬탈한 세조를 비난.

결과 : 김일손 등 신진 사람의 대부분이 죽거나 귀양을 가게 된다. 

갑자사화

연산군(1504) 

원인 : 연산군의 생모인 윤씨의 복위 문제 

결과 : 정여창, 남효온 등을 부관참시하고 김굉필 등 10여명을 사형시킴

※ 신하들이 신언패(말조심하라는 뜻의 패)를 차고 다니게 함.

기묘사화

중종(1519) 

원인: 조광조의 급진적 개혁 추진에 대한 훈구세력과 왕의 반발, 위훈 삭제 사건

결과 : 조광조 등 사림 세력이 사배, 유배, 파직됨. 현량과는 폐지. 공신에서 삭제된 훈구파들은 모두 복훈되어서 재산을 되찾음. 

을사사화

명종(1545) 

원인 : 외척의 왕위 계승문제

결과 : 윤원형 일파 소윤이 윤임 일파 대윤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동조세력인 사림이 함께 화를 입음, 정미사화(1547)이 발생함. 

사화를 통해 사림파뿐만 아니라 훈구파도 크게 세력이 위축되었고, 이때 세력을 잡은 것은 오히려 왕실의 외척 세력이었다. 16 세기 후반 선조가 즉위하면서 지방에서 세력을 키우던 사림파가 중앙 정계로 다시 진출하게 된다. 이때부터 약 150년간은 사림파 내에서 학술적 혹은 정치적 입장 차로 여러 분파가 생겨난다. 이러한 형태의 정치를 붕당정치라고 한다. 붕당정치 기간 동안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발생하였다.

18세기에 들어 영조와 정조가 왕권을 강화하고 붕당정치를 약화시키려 탕평책을 펼쳤다. 정조가 죽고 난 후 외척들이 정치를 주도하는 세도정치가 시작되었다. 19세기 약 60년 간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 다시 안동 김씨가 왕후의 자리를 독점하면서 자신들의 세력을 키웠고, 농민들을 수탈하였다. 이때, 천주교(서학)이 농민들 사이에서 퍼졌고,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동학 또한 널리 퍼져나갔다.

1863년 어린 고종이 즉위하자, 흥선대원군이 섭정을 통해 권력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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