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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짧은 한국사] 1차, 2차 갑오개혁과 을미개혁

by 돈버일하 2017.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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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1차 갑오개혁


김홍집 내각

1894.06 군국기무처 설치

동학농민운동 → 교정청 설치 → 일본의 내정개혁 강요 → 1차 김홍집 내각 구성 → 군국기무처 중심 개혁


개혁 내용

중국 연호 '광서' 폐지, 연호 개국기원 사용

재정일원화(탁지아문)

6조 폐지, 8아문

왕실과 국정 사무 분리, 삼사의 언론기관 폐지, 경무청 설치

은본위제도, 조세 금납화, 일본 화폐 유통 허용

도량형 통일

과거제 폐지, 보통시험/특별시험 도입

방곡령 반포 금지

신분제 철폐, 문벌 폐지, 공/사노비 제도 폐지

조혼 금지, 과부 재가 허용

고문 금지 연좌제 폐지


1차 갑오개혁은 긍정적인 면도 있으나, 왕의 권한을 약화시켰다는 평.

일본의 정치적/경제적 간섭과 침투를 강화시키는 배경을 만들어 주었다는 평.


1894~1895년

2차 갑오개혁


일본군의 군국기무처 폐지

김홍집/박영효 연립 내각

1895.01 독립서고문, 홍범14조 반포

청일전쟁(일본의 승리) → 2차 내각 박영효/김홍집 연립내각 → 군국기무처 폐지 → 일본주도의 개혁


개혁내용

군현제 폐지, 전국 23부, 337군 개편

최초로 근대적 재판소 설치, 사법적 독립권 확보

군국기무처 폐지

지방관의 권한 (단, 행정권만 행사 가능! 군사권, 사법권은 제한)

의정부 → 내각, 8아문 → 7부

궁내부 관제의 간소화, 규장각 → 규장원 (궁 내부의 한 관서로 격하되었음)

시위대 설치


1895년

을미개혁


3차 김홍집 내각 : 온건개화파 + 친러파의 연합

삼국간섭(1895.04) → 친러 김홍집 내각 구성 → 을미사변(1895.08) → 친일 김홍집 내각 → 고종의 아관파천(1896) → 개혁중단


개혁내용

태양력 사용

연호 : 건양

군사개편 (중앙군 :  친위대,  지방군 : 진위대)

종두법 시행

소학교 설립

우편사무 재개

단발령 시행


고종의 아관파천(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으로 인해 러시아는 압록강, 두만강, 울릉도 연안의 산림채벌권을 요구하였다. 이중 압록강 산립채벌권을 얻어온 러시아인들을 보호할 목적으로 러시아가 남하해오자 1903년 용안포사건이 일어난다. 이 용안포 사건은 1904년 러일전쟁의 원인이기도 하다. 러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1905년 10월 을사조약을 체결하였다. 을사조약에서 외교권을 박탈당한 우리나라는 후에 간도협약에서 우리의 입장을 대변하지 못하게 되어 간도를 빼앗긴다. 

고종 아관파천과 알아두어야 하는것은 같은 년도(1896년)에 서재필이 독립협회를 창설했다는 것이다.

갑오개혁과 을미개혁은 신분제 철폐 등 갑신정변과 동학농민운동에서 제기된 요구를 수용했다. 각 분야에 걸친 자주적 근대개혁을 통해 제도상으로 근대국가의 모습을 갖추었다.

하지만, 토지제도의 개혁은 반영되지 않았다. 이는 민중들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개혁주도세력의 일본 의존 성향으로 인해 민중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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